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판사들 '친절·성실성' 내년부터 근무평정 개정 법원조직법에 포함된 내용 뒤늦게 이슈화 대법원 규칙안 마련 고심… 일선 판사들도 당혹 개정 법원조직법이 내년부터 법관 평가 때 친절성과 성실성 등 자질을 평가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나 판사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평정 결과는 고법부장 승진인사를 비롯 연임심사, 해외연수, 보직과 전보 등 인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판사들은 이처럼 중요한 인사 자료에 주관적인 요소가 강한 친절도나 성실성 등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평가해 반영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사건처리기간과 파기율 등을 평정요소에 포함시킨 것은 졸속판결이나 상급심 판례에 무조건 따르게 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친절도 근무평정에 포함… 일선 판사들 불만 속출= 국회는 지난 6월 판사들의 사건처리율과 상소율, 청렴성과 친절도 등을 근무평정에 포함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부분은 로클럭제와 법조일원화 도입 등 당시 이슈에 묻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연말 근무평정 시기가 다가오면서 바뀐 제도에 대한 판사들의 관심과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개정 법원조직법 제44조의2 제1항은 대법원장이 판사에 대한 근무성적과 자질을 평정하기 위해 공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어 제2항은 근무성적평정에는 사건처리율과 처리기간, 상소율, 파기율 및 파기 사유 등을, 자질 평정에는 성실성, 청렴성 및 친절성 등을 각각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판사에 대한 근무평정을 하고 그 결과를 인사관리에 반영할 수 있다. 기준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구체적인 내용은 대법원 규칙에 위임했다. 대법원의 ‘판사근무성적평정규칙’에 따르면 평정은 건강, 직무적성, 직무수행능력 및 기타 인사관리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하도록 돼 있다. 재판의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평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구체적인 직무실적, 추상적·잠재적 직무능력 및 자질을 종합해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판사들은 발끈하고 나섰다. 서울의 한 판사는 “우리가 무슨 AS센터 직원이냐”며 “도대체 판사의 친철도를 무엇으로 평가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방법은 변호사들에 의한 평가 밖에 없는 것 같은데, 변호사들의 법관 평가가 이제 명시적으로 평정 기준이 된다는 것이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또 다른 판사는 “사건처리율, 상소율 등을 근무평정 기준으로 명시했는데 이는 재판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판사들의 불만이 확산되자 서울지역의 한 법원장은 최근 전체 판사들에게 메일을 보내 “개정 법원조직법은 근무평정과 관련해 많은 부분을 대법원 규칙에 위임하고 있다”며 “근무평정에 관한 규칙 제·개정과정에서 재판 독립이 침해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의 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앞으로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규칙 제·개정 과정에 반영하겠다”며 판사들을 안심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사건처리율이나 항소율을 평정요소로 삼는 것은 자칫 졸속판결이나 상급심에 무조건 따르는 판결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친절성을 평가하는 것은 법관의 재판진행 태도를 바꾸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면서도 “법관의 친절성이란 공판중심주의 원칙에 충실해 결정과 판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고 변론기회를 충분히 제공했는가를 평가하는 수준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 대법원은 현재 규칙안 마련에 고심 중= 대법원은 법시행일인 내년 1월 1일을 앞두고 구체적인 평정사항과 기준을 정하는 규칙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대법원은 법 개정 당시 이같은 내용의 개정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정사항으로 명시된 파기율 등은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파기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홍동기 대법원 공보관은 “없던 제도를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 제도를 구체화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친절성 등 주관적인 사항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재판의 독립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인사자료를 추출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대전지법이 자체적으로 시행했던 ‘법정설문조사제도’와 같은 자료가 근무평정에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대전지법은 재판절차에 참여했던 검사와 변호사, 방청객 등을 대상으로 해당 재판부의 재판 진행 및 법관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대전지법은 재판진행의 친절 여부, 의견 청취에 집중하는지 여부, 재판의 공정성과 신속성, 변론기회를 충분히 제공했는 지 등을 묻는 설문지를 배포해 그 결과를 법관의 재판방식 개선에 활용했었다. 하지만 대법원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규칙안이 나온 상황이 아니고, 대전지법의 설문조사는 해당 법원이 자발적으로 실시한 것이어서 이를 전국 법원 판사들의 근무평정으로 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개정법은 내년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평정기준은 2012년 법관평정에 적용된다. 근무평정이 11~12월에 실시되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평정요소를 반영한 규칙은 내년 개정법이 시행된 이후에 완성될 가능성도 크다. 법원행정처 인사실 관계자는 “법 조문만 보면 판사들을 계량화해 순서를 매기는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법이 구체적인 사항을 대법원 규칙에 위임했기 때문에 앞으로 일선 판사들의 의견수렴 등을 거쳐 규칙안을 마련하고 적절하게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irene@lawtimes.co.kr 정수정 기자suall@lawtimes.co.kr/법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