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에서 과실과 인과관계의 입증을 위해 법원 실무는 감정 등을 통해 피해자로 하여금 입증을 촉구하는데, 과실의 입증을 위해서는 주로 진료기록감정(3차 종합병원 혹은 대한의사협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수탁감정, 전문심리위원 제도(사실상 심리에 반영), 전문 조정위원 의견제시 등이 이용되고 있고, 손해범위(손해배상금액)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신체감정 절차가 필수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상세한 내용은 의료소송 센터, 의료소송에서 전문가 감정과 신뢰제고 부분 참조).
진료기록 감정 절차 및 문제점
내용면에서, 감정결과는 해당분야 전문가의 판단결과이기는 하지만, 이를 증거로 채용하느냐 여부는 서증 등 다른 증거와 마찬가지로 법관의 자유로운 심증에 의한 판단에 맡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 결과에 의료과오의 유무에 관한 견해가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법원은 의료과오가 있었는지 여부는 궁극적으로는 의료 시술 당시의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경험칙에 비추어 규범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므로 법원은 감정인의 그러한 견해에 기속되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의료소송 실무에서 당사자들은 물론 일부 법원에서는 감정결과에서 법률요건(과실과 인과관계)을 곧바로 얻고자 하는 문제점이 있고, 감정결과는 재판의 결론을 사실상 좌우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때문에 실무에서 감정 결과의 공정성에 대해 많은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절차의 신속성 면에서, 의료소송 사건에서 재판이 장기화 되는 경우가 많은데(1심을 종료하는데 2년 내외), 감정회신의 지연 문제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감정비용 측면에서 진료기록감정의 경우 종합병원 감정의에게 바로 촉탁되는 경우 통상 60만원(다만 대한의사협회를 통해 익명 감정이 시행될 경우 약 2-3배 전후의 감정료 소요), 신체감정의 경우 감정의에게 통상 40만원 정도가 지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체감정의 경우 환자가 신체감정기관에서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소위 비급여 진료를 받게 되는데, 적게는 100만원 내외에서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의료소송에서 신체감정 대신 기왕에 진료를 받았던 의료기관에서 후유장애 진단서 등을 통해 신체감정을 대체한다고 하는바, 일본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의료소송에서 신체감정 비용은 큰 부담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
(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시행 2013.4.8.][법률 제10566호, 2011.4.7., 제정]에 의해 설립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중재원)은 의료사고와 관련된 감정을 시행하고 있는데, 최근 실무에서는 수사기관 및 민사법원의 수탁감정을 수행함으로써 손해배상과 관련된 민사사건은 물론 형사처벌 여부가 문제되는 형사사건에 대한 감정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중재원 감정의 경우, 감정위원으로 의사가 아닌 시민단체 관계자, 검사, 변호사 등 법률가가 포함되어 있어, 종래의 감정 실무와는 차이가 있고, 향후 중재원 감정 제도가 어떻게 정착될 것인지 관심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수사기관은 기소 여부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중재원장에 대한 감정회신을 중요한 근거로 삼고 있고, 민사법원 역시 과실 및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증거자료로 삼고 있습니다.
(나) 민사 분쟁에서 인과관계는 사회적·법적 인과관계이고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임에도(대법원 2000. 3. 28. 선고 99다67147 판결), 의료인 중심으로 구성된 감정부에서 의학적 판단에 치우쳐 의료인의 과실 및 인과관계를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평가하려고 한다면 의료사고 피해자가 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하는 것이 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것 보다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감정위원은 법관(조정위원)의 보조자이므로 감정인이 규범적 평가에 개입하는 것을 최소한에 그치도록 하여야 하고, 중재원의 감정위원은 임상의학실천당시의 의료수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고, 객관적 기준에 따른 사실행위를 하였는지에 대한 평가를 함으로써 법원(조정부)의 규범적 평가에 참고적 조언을 하는데 그쳐야 하겠습니다.
민사 재판에서도 과실 및 인과관계라는 법률요건은 종국적으로 모든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법관이 판단해야 할 영역이고, 감정절차에서 성급하게 법률요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여 법관으로 하여금 결론을 정하는데 부담을 주는 감정실무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다) 형사절차에서 중재원 감정회신의 문제점과 관련하여, 우선 질문의 관점에서 감정할 사항의 확정이나 질의사항은, 수사기관에서 작성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가령 형사절차에서 중재원에 촉탁된 질문 사항으로 ‘제왕절개 시술시 의료과실은 없었는지, 혹은 의료행위 중 과실이 있었는지’ 등의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중재원은 ‘....수술자의 과실로 보기 어렵다, ..., 형사처벌을 할 만한 과실 점은 찾기 어렵다’는 등 법률요건 즉 사건의 결론에 대해 회신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감정사항으로 언급된 ‘과실(= 업무상의 주의의무위반)이나 인과관계’와 같은 법률적 요건은, 수사의 종결과정에서 최종적으로 검찰에서 판단함으로써 기소 여부를 고려하여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감정절차에서 수사기관은 ‘제왕절개수술 당시 수술 부위에서 출혈을 방지하기 위해 봉합술 과정에서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는지, 즉 봉합과정에서 의학준칙은 무엇인지’와 같은 객관적 의학지식을 묻고, 다음으로 의무기록상 수술 과정에서 어떤 사실관계가 인정되는지를 확인한 다음, 과실이나 인과관계에 관한 최종 판단은 종국적으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수사기관의 몫이라고 해야 합니다.
전문심리위원 제도 및 문제점
전문심리위원 제도는 지적재산권, 건축, 의료, 환경 등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사건에서 법원 외부의 관련분야 전문가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하여 소송절차에 참여하게 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에 기초한 설명이나 의견을 들음으로써 충실한 심리와 신속한 분쟁 해결에 도움을 받는 제도입니다. 전문심리위원은 추상적이며 일반적인 상황에 대해 의견을 진술하는 것이 옳으며,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증거판단을 하는 정도에까지 나아가서는 아니 됩니다. 민사소송법에 전문심리위원이 의견의 형태로 소송절차에 관여할 수 있는 것처럼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전문심리위원 제도의 취지와 그 문제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전문심리위원은 통상적인 의미의 의견(구체적인 사실에 관한 감정판단)의 형태로는 관여할 수 없다고 할 것이고, 전문지식에 관한 일반론적, 객관적인 ‘설명’의 형태로 소송절차에 관여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전문심리위원 제도는 실체적 관점에서 의학적 사항에 대하여 ‘설명에 관한 최대한 허용과 의견 진술의 원칙적 금지’라는 형태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실무에서 감정제도와 전문심리위원 제도가 구분되지 않고 이용되는 경우가 있어, 본래 도입 취지에 맞는 운영이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이용이 급감하였으나, 서울중앙지방법원 및 서울고등법원 등 일부 법원에서 상임전문심리위원을 채용하여 전문심리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당사자들에게 비공개로 하고 전문심리위원이 관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전문심리위원이 소송절차에서 설명 또는 의견을 기재한 서면을 제출하거나 기일에 출석하여 설명이나 의견을 진술하는 경우, 전문심리위원의 설명 또는 의견의 진술에 관하여 당사자에게 구술 또는 서면에 의한 의견진술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바(민사소송법 제164조의 2 제2항 및 제4항), 당사자에게 전문심리위원의 설명이나 의견 진술이 비공개로 관리되고 당사자에게는 의견진술의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형태의 관행은 본래의 전문심리위원 제도의 취지에 어울리지 않으므로, 법원에서는 상임전문심리위원의 절차 관여 정도, 관여 내용 및 당해 사건에 대한 영향 등에 대해 당사자에게 공개되는 형태로 진행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전문가 조정위원 참여 및 문제점
의료소송 실무에서 의사가 조정위원으로 조정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는데, 민사조정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다만 그가 의사와 같은 전문 자격을 소지한 경우에 법률에 근거는 없지만 ‘전문’ 조정위원으로 호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조정위원의 의견은 사실상 감정결과와 같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의사인 조정위원의 의견이 의학에 문외한인 법원의 심증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조정위원의 개인적 생각을 의견서 형식 또는 구두로 진술하게 되기 때문에 전문 조정위원의 조정의견이 사실상 감정 결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부인하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당사자 입장에서는 조정위원의 의견을 알 수 없어 반론의 기회를 박탈하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조정위원의 조정결과는 소송법원칙에 따라 하나의 분쟁해결과정에 그쳐야 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전문 조정위원’이라는 것은 민사소송법이나 민사조정법에 근거한 제도가 아닌 실무 관행에서 비롯된 전문가 제도로 나름 그 필요성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힘들지만, 그 소송법적 지위와 역할이 불분명하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감정인이나 전문심리위원 이상의 역할, 예를 들어 의료소송에서 과실에 관한 의견, 배상 여부에 관한 의견 등에 대하여 진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바, 조정위원이 조정 자체를 넘어 전문적인 의학적 지식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거나 감정의견을 현출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면 전문심리위원 제도나 감정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옳습니다.
감정제도의 바람직한 운영과 의료소송 판결의 신뢰 제고
결론적으로 어떤 전문가 제도를 이용하더라도 법관에 의한 사실확정(事實確定)과 법률의 해석적용(解釋適用)이라는 재판청구권의 본질적인 부분이 훼손되지 않도록, 재판을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과정에서 의사가 실시한 처치내용을 묻고(사실관계 확인), 소송에서 문제된 것과 같은 환자가 있을 경우 어떠한 처치를 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물어(의학지식 혹은 주의의무 확인), 양자의 회신을 비교하여 규범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처치가 진료기록상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날 때 의사의 처치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비교 평가하는 것이 의사의 처치상의 과실을 판단하는데 적절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