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최영 판사 재판 모습
관리자
시각장애인 최영 판사 재판 모습
이어폰으로 재판내용 듣고 필요한 내용 노트북에 메모
사건내용 담은 음성파일 지참… 증거자료는 보조원이 설명
"장애가 부담스러운 것 아니라 판사 직무에 무거운 책임"
“시각장애인 판사라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판사라는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법관으로 임용되고 두 달 남짓 지났는데 법원도 변화하고 저 자신도 변화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내 첫 시각장애인 판사인 최영(32·사법연수원 41기)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는 11일 재판을 마치고 나서 법관으로 일하면서 느낀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오전 10시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701호 민사중법정에서 최 판사가 소속한 민사11부의 재판 모습이 언론에 10여분간 공개됐다.
재판 내용은 임대차계약과 관련한 전세권 말소 청구 사건. 부장판사 옆에 배석한 최 판사는 이어폰을 귀에 낀 채 재판 내용을 들으며 앞에 놓인 노트북에 필요한 내용을 메모하고 중간중간에 부장판사와 대화를 나눴다.
법원 관계자는 “최 판사는 사건 관련 내용을 USB에 음성파일로 담아 갖고 들어와서 이어폰을 끼고 필요한 내용을 찾아 들으면서 재판을 진행한다”며 “두 번만 내용을 들으면 다 외울 정도”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27일 임명장을 받은 최 판사는 북부지법에서 근무한 지 이제 2개월이 넘었다. 최 판사는 “판결문 작성도 하고 있고 열심히 재판에 임하고 있다”며 “법원에서 시각장애인 판사를 지원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제 의견을 많이 들었고 법원에 들어와서도 제가 필요하고 부족한 점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고 보완·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 판사가 재판에 필요한 내용들은 음성변환 프로그램으로 소리로 들을 수 있게 변환되고 컴퓨터 파일화되지 않은 내용들은 업무 보조원이 낭독을 하면 최 판사가 듣고 필요한 부분을 파일화한다. 또 물건이나 사진 같은 증거자료는 보조원이 묘사를 해준다.
법원은 최 판사 임용에 앞서 최초의 시각장애 판사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전용 지원실과 점자유도블록을 설치하고 업무를 도울 보조원을 채용하는 등 준비를 했다. 지원실은 최 판사가 언제든지 음성변환 프로그램을 통해 한글 파일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음향실이 설치돼 있다. 최 판사가 듣는 음성기록의 재생 속도는 일반인이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최 판사를 보조하는 최선희(31) 실무관은 “1개 사건 읽어주는데 두세 시간 걸린다”며 “장애가 있지만 성실히 노력하는 최 판사에게 배울 점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고3 때인 1998년 점차 시력이 나빠지는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은 최 판사는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2005년부터는 책을 읽을 수 없는 시각장애 3급 판정을 받았고 현재는 방에 불이 켜졌는지만 알 수 있는 정도인 1급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다섯 차례 도전 끝에 2008년 시각장애인 최초로 사법시험(50회)에 합격했다.
최 판사는 “국민이 법원에 주신 사법권 행사라는 무거운 권력행사를 어떻게 시각장애인 판사가 할지 법원 내외부에서 걱정하고 있고 나도 한다”며 “그러나 국민들이 도와주시고 법원 내부에서 법원장과 부장판사, 동료판사, 직원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모 기자 cnckim@lawtimes.co.kr / 법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