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일 의료법학자 어빈 도이치 교수
관리자
[인터뷰] 독일 의료법학자 어빈 도이치 교수
"의료법분야 환자 意思가 가장 중요시 돼야"
“존엄사 문제든, 낙태 문제든 환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시돼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지난 10일 저명한 의료법 학자인 독일 괴팅겐대학의 어빈 도이치(Erwin Deutsch·사진) 교수가 4박5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도이치 교수는 의료법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의 의사가 얼마나 충실히 의료행위에 반영될 수 있는 지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했다. 의사책임법과 의약품법, 의료기기법, 수혈법 등 수많은 의료법에 관한 책들을 집필하는 등 의료법을 독자적인 전공분야로 개발해 ‘의료법의 시조’라고 불리는 도이치 교수에게 최근들어 우리 사회의 이슈로 떠오른 존엄사문제와 낙태문제에 대해 물었다.
-존엄사 허용여부가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대법원이 지난해 연명치료중단에 대한 환자의 추정적 의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한국의 대법원은 존엄사에 관한 일반적인 기준을 받아 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제시한 존엄사 허용기준 4가지 모두 전적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독일에서는 환자의 추정적 의사를 인정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을 발견하려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의 추정적인 의사판단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독일은 후견법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환자의 추정적 의사가 분명치 않은 경우와 환자 보호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할 경우 등 의사가 치료행위와 치료중단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경우 후견법원이 이에대한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1981년 ‘비티히 사건’과 1983년 ‘학켄달 사건’으로 존엄사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됐는데.
독일은 판례에서 존엄사가 인정된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판례끼리 충돌하고 있는 양상이다.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례부터 연명장치제거와 관련해 위법한 살인미수라는 판례와 너무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판례 등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법조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각의 사례에 맞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독일연방의사협회의 ‘존엄사 가이드라인’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입법과 판례 중간단계에서 적절하게 조절해 가면서 양자의 불충분한 부분을 메워주고 있는 상태다.
-최근 한국에서는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이 동료 의사들을 낙태죄로 고발한 일이 벌어져 낙태문제가 이슈화 되고 있다.
한국의 낙태문제는 현실과 입법상황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법이 허용하고 있는 ‘예외적인 경우’는 그 범위가 너무 좁다. 반면 독일은 3주까지는 경제적 이유나 신체적 사유 등을 막론하고 모두 허용하고 이후의 3주는 산모의 건강에 따라, 마지막 3주는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3:3:3주기 원칙이 시행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여성의 의사결정과 건강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국회는 의료분쟁소송절차를 다룬 법안들을 심사하고 있다. 의료사고의 입증책임을 의료인이 질 것인지, 환자측이 질 것인지가 중요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분쟁절차의 경우 독일은 의사가 입증하도록 이미 정리가 돼 있다. 한국은 판례를 통해 독일과 비슷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지만 의사단체 등의 반발로 인해 충돌하고 있는 상태라고 알고 있다. 의료분야는 전문적이고 복잡한 영역이기 때문에 의료사고의 원인을 환자에게 입증하라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임순현 기자 hyun@lawtimes.co.kr/법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