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중에서 얻은 강박증으로 인한 우울증과 십자인대 재파열 그리고 반월성 연골판 재파열
이우열
2004년 국방부 산하 수기사단에서 전역을 5일 앞둔 상황에서 우측 슬관절 십자인대가 파열이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에 저희 중대는 남양주 55탄약대대 ASP 경계지원근무로 파견을 나가있는 상태였습니다. 55탄약대대의 산세는 몹시 험준하여 당시에 경계근무자들을 인솔하여 하루에 5~6번 정도 막사와 근무지를 왕래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무릎에 약간 통증이 있었지만 그냥 소염진통파스로 통증을 완화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무릎에서 정강이의 뼈가 빠졌다 들어가는 느낌이 있었고 몹시 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55탄약대대에서 병원을 가게 되었고 X-ray촬영만으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정확한 것은 MRI 촬영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군의관님이 제 전투모를 보며 몇일 남았냐고 여쭤 보시길래 5일 남았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나가서 수술해라라는 말씀을 듣고 반깁스를 한 상태로 부대복귀를 했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 때 당시엔군병원 자체에 신뢰가 깊지 않았고 그리하여 전역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1~2년이 지난 후에 군인들이 의료보험이 적용되며 치료하기 힘든 수술이나 병이 생기면 휴가를 주고 나가서 치료하고 온다는 얘기를 동생들에게 듣게 됐습니다 좀 억울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나와서 안양 샘병원에서 MRI를 촬영하고 안양시 평촌동에 위치한 한림대학병원에서 6월 14일에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란 세월이 지났고 저는 그 기간 동안에 조금만 무리를 해도 움직이기가 힘든 상태로 버텨왔습니다 MRI니 치료니 제가 직장을 계속 다니지를 못해서 가계에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서 자가치료를 해왔습니다. 300~400만원의 비용과 일을 할 수 없는 몸상태가 되어서.. 하지만 제 자신이 아프니 재활운동은 꾸준히 했구요
2005년, 2006년 두 번에 걸쳐 국가보훈청에 유공자 신청을 하여 몇달뒤에 나오는 신체검사일에 맞춰 서울 둔촌동에 위치한 보훈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근데 그 검사라는 것이 제가 가지고 간 많은 서류들과 사진 중 수술 후 찍었던 MRI사진을 잠시 보시고 누워서 다리를 구부려보는 것으로 2분정도의 짧은 시간으로 판정이 됐습니다 이유는 통보 받지를 못했지만 우측슬관절 십자인대 파열이 안된다고만 서신으로 확인 하였습니다 그러고 난 후 그냥 어쩔 수 없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6년이란 세월동안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2010년 6월 11일 친구들과 식사를 하던 도중에 탁자에 무릎을 부딪히는 생활 중 상해를 입었습니다 근데 평소와 다르게 너무 아파 집근처의 관절전문병원을 가서 진료를 받았고 인대가 파열된거 같다는 말씀을 듣고 확실한 것은 MRI를 찍어봐야 확정을 내릴 수 있다 하셔서 찍었습니다 결과는 재파열이었습니다. 그 곳이 관절전문병원이라고는 하나 십자인대가 재파열된 것에 대해 재건술을 시술하기엔 어렵다 하시고 입원하라 하셔서 인대가 파열되며 고인 피를 빼고 진통제와 소염제를 먹어가며 일주일정도를 입원하다 퇴원을 하였습니다(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시드라구요) 비용도 50만원정도 들었구요
그래서 퇴원을 하여 보훈공단의 감사실장님과 통화를 하였습니다 근데 유공자 판정은 보훈병원에서 신체검사 담당하시는 분이 있다며 소개를 시켜주셔서 보훈병원의 신체검사 담당 최종원 대리님과 통화를 하였습니다 연락을 취하고 나서 제가 들은 것은 대리님은 단순히 보훈병원의 신체검사를 하기위하여 자리를 만드는 것이고 판단은 지방에서 판정하시는 분들이 올라와서 판정을 한다고 보훈청에 의뢰를 해보라 하시고 신청하여 몇 달 뒤의 신체검사를 기다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넉넉지 않은 저의 가계로서는 비용들이 부담이 되고 한번 수술을 받았었기 때문에 보험처리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훈공단의 감사실장님과 다시 통화를 했습니다(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상황이 안 되면 다시 연락하라고 하시면서) 근데 다시 연락을 드렸더니 또다시 제가 들은 결과는..보훈청에 신청에 신체검사를 받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유공자로 책정이 되면 그전의 치료비도 보상이 된다고 최종원 대리님이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6년이란 세월동안 거의 일도 못하고 나이는 한창 열심히 경제생활을 해야 할 30살인데 자꾸 가계에 부담을 드리니 한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파열된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당장 300~400이라는 돈도 마련하기 힘들고 또 수술후 입원비와 재활치료비..맘 한구석이 너무나 불편합니다
그러다보니 2분정도만에 끝나는 신체검사가 너무나도 서럽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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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저는 2001년 상근예비역을 배정받았었고 2002년 3월 12일 제가 수원병무청을 가서 지원하여 306보충대를 통해 수기사단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군 생활을 하던 도중에 저는 무조건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훈련 및 작업에 임하다가 우측 어깨도 습관성 탈골이 되어 뒤쪽의 인대가 파열되어 있는 상태이고(8년째) 이 것은 수기사단의무대를 가서 한의과를 가서 침과 찜질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파열되어 있다는 것은 제대후 어깨가 너무 시려서 근처병원에서 MRI사진 판독결과 알았습니다(이 것도 또한 보훈청 신체검사 2분만에 탈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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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기사 1여단 133대대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처음 6주간 군사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배치받아 본부중대의 한 내무반에서 하루를 지내는 동안에 세탁물건조대를 보았고 거기에 걸려있던 속옷중 하나에 배설물이 묻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머릿속에서 뭔가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강박증이라는 것이.. 나날이 갈수록 강박증이 심해지고 우울증과 동반되어 거기서 더 나아가 조울증 증세까지 보이며 자살시도도 몇 번 할 정도로 정신상태에 이상이 심해졌습니다. 주로 결벽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게다가 부대자체가 하루에 물이 아침, 저녁으로만 나와서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고 난 후 세수대야에 물을 떠서 내리고(빨리 내리고 가려고 주의하지 않고 내리기 때문에 물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물을 받아놓는 욕탕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부유물이 떠있고..그래서 저는 대변을 보고 난 후에는 무조건 샤워를 했습니다 평균 영하 10도의 겨울에도 불침번에게 한시간 일찍 깨워 달라하여 큰일을 보고 찬물로 속옷을 빨며 샤워를 했습니다 속옷을 빨 때도 20분정도를 할애하며 왼쪽 검지와 엄지는 항상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살다가 허벅지가 튼 적은 군 생활 때뿐입니다 당시 친구들이 바디로션을 한박스나 보내줬습니다
그렇게 생활을 했을 때 제가 이등병 때는 이쁨을 받았습니다 이등병인데 청결하다고(전 무조건 군 생활을 열심히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급이 높아짐에 따라서 후임들이 많이 피곤했을 것입니다 제가 수시로 손 닦고 왔는지 확인하고 여기 닦아라 저기 닦아라 정말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전역후 한림대병원에서 한달을 넘게 있으며 샤워 및 씻는 것을 제대로 못하면서 증세는 너무나도 나빠졌습니다 군대에서는 대변을 보고 속옷을 빨고 샤워를 하는데 한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퇴원후엔 대변을 보고 샤워를 하는데(속옷을 세탁기로..) 2시간.3시간.4시간 점점 늘어갔습니다 정말 오래 있었던 적은 10시간정도입니다 여름만 제외한 다른 계절엔 항상 손과 발이 트고 저희 집의 구역이 단수가 되었을 때 지방에 내려가서 방을 하나 얻어 속옷은 입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지내다 물이 다시 나올 때 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뭐 드라이 해야하는 옷은 사지도 못하고 일단 집에서 한번 나갔다 들어오면 무조건 옷은 다 빨고 샤워해야하고.. 왜 이렇게 사는게 힘들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자살시도까지 몇 번 했습니다
신경정신과를 처음부터 다녔어야하는데 비용도 부담되고,(한번 가면 10만원정도,2주에 한번씩) 제 의지로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건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을 6년만에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2009년 3월 12일부터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서울대학병원에서 강박증 중증도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약물투여 실험에 참가했습니다(비용이 안드는 테스트였고 외래진찰보다 더 많은 시간을 상담하고 주기적인 건강검진까지 게다가 유전자까지 병원에서 관리를 해줬습니다) 4개월의 테스트였고 그 후에는 자비로(가계에서 나가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1년 3개월을 넘게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처방받아 먹는 약이 아침에 8.5알 저녁에 9알입니다) 먹었던 약들은 렉사프로정, 아티반정, 자이프렉사정리보트릴정, 데파코트서방정, 세로켈정, 졸로푸트정, 졸피람정, 알프람정, 라믹탈정 등입니다
지금 주위에서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제가 원해서 갔었기 때문에 제가 지원해서 갔기 때문에.. 정말 군생활 하나는 열심히 했다고 자부 합니다 그래서 법이라는 것으로 나라를 상대로 이득을 보고 싶고 그런 생각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의무니까요..
휴.. 저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고등학교를 입학후 방황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지니고 시간이 되는 한 봉사활동을 자주 갔었습니다 그런데 결벽증이 정도를 지나치며 갈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2주에 한번씩 헌혈을 하고 있습니다 몇 번만 더하면 보건복지부에서 나오는 은장이라는 것을 받게되구요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일을 할 여건도 안되고 이런 것들에 대하여서 너무 힘들어 신문고에 글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수술자체도 지금까지 병원을 꾸준히 다니면서 강박증이 많이 좋아진 편인데 수술 후 또 악화될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지금 저는 너무 힘들고 마음이 복잡합니다 어떻게 해결한 방안을 알려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