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상담실

신장 이식 후 사망. 최우빈


답답해서 그리고 할 수 있는 일 이 하나도 없어서, 이렇게 글 올립니다.

어머님이 만성신장병으로 돌아선지는 약 1년 5~6개월이 되었습니다. 투석은 작년 9월 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64년생인 젊은 나이에 어머님께서 투석하는 것이 많이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외동아들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많이 힘들어서 없는 삶에 힘들게 신장이식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신장이식을 결심하는데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었지만, 큰 수술인지라, 경제적인것에 고민하다. 그만 그냥 신장이식을 하고 빨리 제가 경제적 활동을 시작하면 다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여기 카페에도 신장이식과 투석에 관하여 글을 한 두 번 올렸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4월 5일 식목일 그렇게 신장이식을 하였습니다.

문제는 신장 이식 후 였습니다.

신장이식후 병원에서는 수술이 잘됐다. 라는 말 과 함께 1달 정도 병원 생활을 하고 퇴원했습니다.

어머님도 만족했었습니다.

그러다가 2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어머님께서 신장에 이상이 왔습니다.

병원에서는 신장이식에 대한 거부반응이 왔다고 말씀하셨고 2~3주 후 스테로이드? 치료 후 ? 이제 괜찮다고 퇴원하라고 해서, 퇴원했습니다.

퇴원 후 약 10일 이 못 돼서 어머님께서는 적은 소변량에 하혈을 하였고,아들에게 신장이식을 받은 어머님께서는 혹여나 신장이 잘못 됐을 까봐 제가 말씀도 못하고 많이 불안해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퇴원 후 10일이나 지났을까? 다시 병원으로 들어갑니다. 입원후 1주일 쯤 지났을 때 검사 결과 거대 바이러스? BK바이러스? 바이러스에 감염 됐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물론 걱정할 것 없다. 최악의 상황에는 어머님께서 신장을 떼내야 하지만, 어머님 목숨에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투석을 병행하면서 병원생활을 한지 약 3주가 지났을 때 어머님께서 갑작스럽게 호흡을 하기 힘들어 하셨습니다.

물론 그전에 폐사진과 여러가지 검사가 있었구요.

응급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걱정할 것은 없지만, 아무래도 이식받은 신장을 제거 하는 수술을 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고생많았다했습니다. 불가 하루전까지만해도 치료로 많이 기력이 약해지신 어머님은 재활치료를 하며 2주 경과를 지켜본 후 퇴원을 준비하던 차였습니다.




결국 신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마쳤고, 선망증세로 보이는 어머님께서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셨습니다.

수술 직후 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죠.

수술이 잘끝났다길래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어머님도 몸은 힘들지만, 뭔지 모르게 기분은 더 나아지셨다고 말씀하셨구요.

그런데 2일 3일 선망 증세를 보이고 급기야 어머님께서 손발이 이상하다. 기억이 왜곡된다 등, 말씀이 있으셔서.

의사선생님, 교수님을 붙잡고 어머님이 이상하다고 수. 차례 더 수십차례말씀드렸습니다.




그때마다 괜찮아 지실 거라구 했구요. 그런데, 어머님 호흡에 차도가 더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투석을 계속하고 계셨고 폐에 물이 차서 그런 거라고 투석을 했습니다.

수술 후 5일 정도가 지났을까? 9월9일 어머님께서 갑자기 응급 중환자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병원에서는

폐에 더 문제가 생기기 전에 선도적 조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4시간 투석을 하기 위해서 폐에 물이 빠지면 괜찮아 질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응급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어머님과 면회시간도 철저히 통제 받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은 의식이 멀쩡하신 상태라, 변보는 일 들을 엄청 힘들어 하셨습니다. 응급중환자실은 움직이지 못하니까요.




제가 응급중환자실 면회를 갔을 때 어머님이 나가고 싶다 했습니다. 무섭다 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어머님 손에 억제대가 묶여있을 줄을...

의사선생님께 여쭤보니, 담당의께서는 간호사분을 불러놓고 호통하셨습니다.

의사 처방없이 이럴 수 있는거냐고.. 보고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턴 어머님께서 귓속말로 그러셨습니다.

무섭다고. 풀어달라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엄마를 억눌렀다고. 그리고 엄마는 아무이유없이 갑자기 당한거라고.

제가 감정이 격해 진 걸 수 도있습니다. 물론 어머님께 이상반응을 보여서 그랬을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담당의도 몰랐습니다. 보호자도 몰랐습니다. 어머님은 거기서 트라우마가 생긴이후로 돌아가실때까지.

의사 간호사를 신뢰하지 못하셨습니다.




추석 당일 면회시간에 교수님 호출이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 경련증상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경련 후 수면인지 약인지, 의식이 없다하셨습니다.

깨어나 실 거라고 조금 기다리랬습니다. 정말 웃기게도 추석 전 날 나는 간호사 실에 커피를 사다 날랐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머님이 이번 주 내에 일반병실로가고 다음주면 퇴원 하 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폐가 예민해서 그러니 스테로이드 치료가 잘먹혀서 곧 퇴원한다고 퇴원하면 집 근처 재활 치료를 알아보시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식이 희미해질 일이 생길 줄 몰랐습니다.

전혀 생각도 못했고, 교수님께서도 그랬습니다.

합병증이 많이 생겨서 걱정은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고.

뇌에 저산소성 데미지가 쌓인 것같다고 ,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술 직후 어머님께서 새벽에 제가 잠깐 화장실로 자리를 비운 시간에 호흡기가 벗겨져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해서.

호흡기를 제자리에 한 후 간호사분을 불러 물었습니다. 그러자 1분이 채 안됐다고, 걱정안하셔도 된다고 확인하고 있었다고. 그랬습니다. 그 일은 제가 바로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교수님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아무래도 그때 일이 원인이 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걸어서 들어왔고 이제는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버님은 외국에 사셨습니다.

아버님께 급하게 전화를 드린 후 아버지는 한국에 들어오셨습니다.




담당의나 신경외과에서는 예우가 좋지 못하다 깨어나지 못하 실 수 있다. 그러면서 뇌사, 식물인간, 의식불명 등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어머님은 조금씩 계속 머리를 흔들고 계셨습니다. 깨어나면 기적일 것이라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담당의가 교수님께서 너무 감정적이다. 의사는 보호자에게 할말을 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힘들 수 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정확히 2일 후 어머님께서는 깨어났습니다.

깨어나면 기적이라고 했지만 병원에서는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반응 일 꺼라고

가족들이 와서 보고는 병원에서 오진한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어머님은 멀쩡하셨습니다.




매일 폐사진을 찍는데 폐도 좋아졌다 했습니다. 뇌파검사도 긍정적이라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정말 잘된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응급중환자실에서 중환자실로 어머님을 이동하셨습니다.

이동하는 도중에 어머님은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산소가 제대로 공급이 안 된 듯 했습니다 (이건 의사소견과 상반됩니다)

급해서 제가 병원 침대를 밀고 갔습니다 빠르게, 옮기는데 학생간호사 한명과 여자 간호사 한명 뿐이어서 미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빠르게 밀고 응급실 까지 갔습니다.

산소호흡기나 기구들은 전혀 설치가 되어있지않았습니다.

수간호사 선생님은 응급중환자실 간호사를 불러서 혼냈습니다. 의사는 빨리 연결하라고 소리쳤습니다.

간호사가 7명이 붙었지만 수간호사는

응급중화자실 간호사를 불러내어 계속 혼 냈습니다. 저와 아버지를 나가라고했습니다.

저랑 아버지는 살려달라고 숨이 안쉬어진다고 소리치는 어머님을 두고 나갈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어떤것도 연결도 안되있고 그 와중에 간호사들 어머님 케어중인데 간호사를 불러내어 혼내고 있는 수간호사를 보고는 더 욱이 나갈 수 없었습니다. 수간호사는 아버지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돌이켜 보면 병원생활하면서 제가 가장 흥분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리힘을 풀려 넘어지길 여러차례했습니다.

의사는 밖에 나와서 안정 됐다 했습니다.

그러고 10분뒤 다시 기관삽입을 해야한다 했습니다.

아버지랑 담당의가 눈싸움과 언쟁이 오갔습니다.

분명 괜찮다 했습니다. 아빠가 엄마 살려내라했습니다.




앞서 글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제가 글을 쓰다 흥분해서 다소 오해의 소지나, 약간의 왜곡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의사의 대화는 전혀 잊을 수가없습니다. 한치의 오차없이 담당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꼭 옮겨야 했냐는 아버지 말씀에.

옮겨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 판단 미스다. 기관삽관하지 않으면 당장 힘들 수 도 있다.

아버지는 삽관하지 말아라 분명 괜찮다 하지 않았느냐. 라고 말씀드리자.

오늘 아침 폐사진이 좋지 못했다.




그럼 왜 옮겨야 했느냐 ? 환자를 위한거냐? 병원을 위한거냐? 엄마가 살려달라는데 너네가 한게 뭐가 있느냐?

누구에게 어떤 설명을 했느냐 ?

분명 내 판단 미스지만, 보호자를 위해서 그랬다. 병원비가 많이 나오니 응급중환자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긴 것이다.




라고 언쟁이 오갔고 아버지는 끝까지 기관삽관하면 안된다 분명 방금까지 자가호흡이었느데 기계호흡으로 돌아가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겁이나서 제가 기관삽관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셨습니다. 살려달라고 소리쳤던게 저희 어머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십니다.




기관삽관이후 어머님께선 안정을 이유로 계속 수면제를 드셨고, 약 2주쯤 지났을 때 기관절개를 하기 전 기구를 빼보겠다고 했습니다. 빼고 호흡하고 만 12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어머님은 폐가 찢어 지셨고, 기흉으로 어머니 가슴에 긴 관을 하나 더 연결 한 뒤 , 하루 뒤 돌아가셨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힘들고 답답합니다.




어떻해야 어머님의 억울함을 풀 수 있을까, 생각중입니다.

어디서 부터 어떻게 잘못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떠한 왜곡도 없이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긴글 읽어주신분들 감사드립니다.




어떻게해야 하는지 이런일을 겪으신분들은 보통 어떻게 하는지 좀 알려주세요.




1. 병원에서 하라는대로 다 했다.

2. 병원에서 뇌에 저산소성 데미지를 입으셨다.

3. 어머님 손발 억제대는 어머님께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후 간호사들과 의사들이있는곳에서는 귓속말로만 말씀하셨다.

4. 응급중환자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는 모습이 어머님이 정신이 있으셨던 마지막 모습이다.

5. 기관삽입을 뺀 후 기흉이 생겼다.

6. 사망진단서에는 1차원인 2차원인등 폐에 문제를 삼았지만, 뇌에 문제가 생기면서 폐를 치료해야 할 시기를 놓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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